Title 목사님들이 왜 윤석열을 ‘용인’하는가 [독서일기]
Author 이현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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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href="https://binance-bitget.com/dangjin/" target="_blank">당진개인회생</a>나치 시대의 법학자 카를 슈미트가 ‘정치신학(political theology)’이라는 용어를 처음 사용했다는 말이 있다. 그의 정치신학이 과연 정치신학이기는 한가, 하는 의문을 제쳐두고라도, 슈미트가 저 용어를 통해 정치신학을 처음 사유했다는 가정은 용납할 수 없다.

정치신학의 주요 주제 가운데 하나는 신앙인이 어디까지 국가에 복종할 것인가 하는 문제인데, 이 문제는 그 어느 종교보다도 기독교에서 특별하다. 그리스 정치철학에 따르면 폴리스는 인간에게 주어진 혹은 타고난 목적이다. 폴리스의 바깥은 없었던 것이다. 그런데 기독교는 사상 유례없는 정치철학적 문제를 제기했다. 예수가 “나의 왕국은 이 세상의 것이 아니다(요한복음 18:36)”라고 했기 때문이다. 초기 기독교인들에게 거듭 문제가 되었던 ‘두 왕국(론)’은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누가복음 20:25)”라는 예수의 말씀과 “각 사람은 권세에 복종하라. 권세를 거역하는 것은 하나님의 명을 거역하는 것이요, 거역하는 사람은 심판을 받게 될 것이다(로마서 13:1~2)”라는 바울의 말로 정리가 되었지만, 기독교인은 다음과 같은 베드로의 말도 유념해야 했다. “사람에게 복종하는 것보다 하나님께 복종하는 것이 마땅하다(사도행전 5:29).”

로마가 기독교를 국교로 채택하고, 교황과 교회가 유럽을 지배한 1000년 동안 중세에는 초기 기독교인의 고민이었던 두 왕국(론)은 크게 문제가 되지 않았다. 두 왕국이 하나였기 때문이다. 종교개혁이 시작되면서 교회와 국가 사이의 관계를 탐색하는 정치신학이 발전한다. 1517년 면죄부 판매를 비난하는 ‘95개조 반박문’을 비텐베르크 교회의 문에 게시하면서 종교개혁의 포문을 열었던 마르틴 루터는 교황(바티칸)을 적(敵)그리스도(antichrist·그리스도를 흉내 낸 가짜 그리스도)라고 보았다. 교황은 지상에서 세속적인 정치권력을 행사하고 있는 동시에 연옥을 자신의 관할이라고 주장함으로써 섞여서는 안 되는 두 왕국(론)’을 혼합했던 것이다. W. D. J. 카질 톰슨의 〈마르틴 루터의 정치사상〉(민들레책방, 2003)에서 한 대목을 보자.

“사탄의 가장 강력한 무기는 루터가 두 왕국 혹은 정부의 혼동이라고 부르는 것인데 그러한 혼동은 사탄이 영적 권력자들이나 혹은 세상 권력자들에게 두 정부 사이의 구분을 무시하거나 서로 다른 사람의 권위에 간섭하도록 설득할 때 일어난다. 두 정부는 혼합되지 아니하고 구분되어야 한다는 것은 필수적이다. 각 정부는 그 자체의 목적과 특징, 기능들을 가지고 있다. 둘을 혼동하는 것은 세상을 하늘의 왕국으로 인도하는 것이고 그 역도 마찬가지다. 루터에게 교황권은 두 정부를 혼동한 원형적인 예를 대표하며 바로 이러한 사실은 교황이 적그리스도와 동일하다는 주장을 증거하는 부분이다.”

최초의 근대적인 정치신학자였던 루터의 정치 교의는 세 가지로 요약된다. 첫째, 정치권력은 하나님의 종복이자 대리인이다. 둘째, 어떤 경우에는 하나님의 법을 더 잘 따르기 위해 세속의 법을 어길 수 있다. 하지만 불복종이 의무인 때에도 폭력적인 저항은 절대 안 된다. 칼을 가지고 하는 저항은 두 왕국을 혼돈하는 것이다. 셋째, 지배자는 폭군이더라도 하나님의 도구이다. 불의한 정치권력에 대한 심판은 하나님의 권한이며, 반란을 일으키는 것은 악마다.

카질 톰슨에 따르면 루터의 정치 교의는 상당 부분 무정부에 대한 두려움에서 왔다. “루터는 인간 자신들의 죄 된 본성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해서 세상 정부의 억제가 없다면 인간들은 홉스 식의 자연 상태로 퇴보할 수 있다는 것을 너무도 확신했기 때문에 그는 반란을 모든 가능한 죄들 가운데서 가장 나쁜 것으로 보았다. 정부를 전복하려고 위협함으로써 반란은 온갖 종류의 죄들, 즉 살인, 유혈 사태, 강간, 약탈 등과 같은 죄들에 대한 길을 열어놓는다.”

루터는 손현보 목사를 뭐라고 부를까

루터가 살던 때는 선거 민주주의가 없었다. 그는 정치권력이 선거에 의해 뽑힐 수 있다는 것을 허용하지 못했다. 정치권력은 하나님이 선택하는 것이지 인간의 손으로 뽑힐 수 없기 때문이다. 슈미트가 생각하는 정치도 그와 같다. 자신의 신학적 사고의 요체를 처음으로 밝힌 1923년 저작 〈로마 가톨릭교와 정치적 형식〉(두번째테제, 2024)에서 슈미트는 선거를 통해 정치권력을 얻은 사람을 ‘대리(代理)’로 폄하하면서, 유권자(경제적 시민)의 변덕에 의해 주권자와 정책이 결정되는 민주주의와 의회주의를 거부했다. 대신 그가 내세운 것은 ‘대표(代表)’다. 대리를 결정짓는 표는 경제적 이해관계나 군중심리에 좌우되는 반면, 대표는 견고한 법과 항구적인 이념에 의해 결정되며 그가 의사를 결정하는 방법 또한 토론(의회)이 아닌 권위(힘)다. 슈미트는 이 모델을 가톨릭 교회와 교황에서 찾았는데, 교황이 그리스도의 인격을 구현한 지상의 대표이듯, 총통은 민족을 구현한 대표다. 교황도 총통도 원칙적으로는 전체 혹은 일반을 대표할 뿐, 자산가나 노동자와 같은 부분을 대표하지 않는다..